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교단에 선 지 15년이 넘었지만, 최근 몇 년간 매일이 똑같다는 느낌에 갇혀 있었습니다. 3월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지만, 가르치는 내용도 수업 방식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그런데 데이비드 이글먼 박사의 연구를 접하고 나서, 제 뇌가 왜 이렇게 무뎌져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뇌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으려 하고, 결국 시간마저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구조였던 겁니다. 이 글에서는 이글먼 박사가 제시한 뇌 가소성의 원리와, 제가 직접 실천하며 느낀 변화를 바탕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뇌를 어떻게 깨워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공유하겠습니다.

뇌는 반쯤 구워진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쯤만 프로그래밍된 상태로 세상에 나와, 주변 환경과 경험을 통해 나머지 절반을 채워 나갑니다(출처: 스탠퍼드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이글먼 박사는 이를 "자연이 인간에게 건넨 가장 큰 속임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약 3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지금의 저와 똑같은 DNA를 가진 아기가 태어났다면, 겉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생존 기술을 익히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여기서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란 뇌가 경험에 따라 스스로 회로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뇌는 고정된 컴퓨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선을 바꾸는 살아있는 네트워크라는 뜻입니다. 뇌에는 약 86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각 뉴런은 평균 1만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매 순간 강화되거나 약화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매일 같은 길로 출퇴근하고,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고, 같은 순서로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글먼 박사의 강연을 듣고 나서, 의도적으로 출근길을 바꾸고 반대쪽 손으로 양치질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몇 주 지나자 아침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뇌가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더 많은 '기억 밀도'를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새로움을 추구해야 뇌가 깨어난다
이글먼 박사는 "뇌를 젊게 유지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이 원칙이 중요한데, 뇌는 자신이 이미 세상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변화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크로스워드 퍼즐을 매일 푼다고 해서 뇌가 계속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몇 주는 효과가 있지만, 익숙해지면 더 이상 뇌에 도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익숙해지면 멈추고, 잘 못하는 다른 것을 시작하라"라고 조언합니다.
제가 올해 시작한 가장 큰 도전은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였습니다. 교육학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 처음엔 법률 용어조차 낯설었습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민법과 부동산 공법을 공부하는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뇌가 깨어나는 느낌이 확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여기서 아세틸콜린이란 뇌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 방출되는 화학물질로 기억 형성과 주의력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뇌 가소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 해보는 악기나 운동 배우기
- 평소 쓰지 않는 손으로 일상 동작 하기
- 새로운 언어 학습 시도하기
- 익숙하지 않은 경로로 출퇴근하기
- 분야가 다른 책이나 강의 접하기
중요한 것은 '좌절스럽지만 달성 가능한 수준'의 도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너무 쉬우면 뇌가 반응하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지만, 일단 리듬을 타면 학습 자체가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기억의 밀도로 결정된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요? 이글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그것은 실제 시간이 더 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기억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어서 뇌가 더 많은 정보를 기록합니다. 반대로 어른이 되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 뇌는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않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50대에는 한 해가 10대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박사는 150피트 높이에서 사람들을 자유낙하시키는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사람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보고했지만, 실제 지각 속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편도체(amygdala)가 활성화되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기록했고, 그 결과 회상할 때 시간이 더 길었다고 느낀 것입니다. 여기서 편도체란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아몬드 모양의 구조로, 감정과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역입니다.
저는 이 원리를 직접 적용해보기로 했습니다. 8살, 12살 두 아들과 함께 매주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공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주는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한 달쯤 지나자 주말이 예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도 "이번 주말 진짜 길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평소 집에서 유튜브만 보던 주말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시간 인식을 풍부하게 만드는 핵심 원칙:
-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
- 일상의 작은 루틴을 의도적으로 바꿔라
- 경험을 사진이나 일기로 기록하여 기억 밀도를 높여라
이글먼 박사는 "더 오래 산 것처럼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기억을 만들어라"라고 말합니다. 실제 수명을 늘릴 수는 없어도, 체감 시간을 늘릴 수는 있다는 뜻입니다.
미래의 나를 위한 율리시스 계약
이글먼 박사는 '율리시스 계약'이라는 개념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그 노래에 홀려 배가 난파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했죠. 여기서 율리시스 계약이란 현재의 이성적인 자신이 미래의 충동적인 자신을 미리 제약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의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나중의 나는 유혹에 약할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선택의 여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소셜 미디어 사용에 적용했습니다. 제 스마트폰에는 인스타그램과 X(구 트위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자주 들여다보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 전용 구형 폰을 따로 마련하고, 평소에는 집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처음 며칠은 손이 근질거렸지만, 일주일 지나자 오히려 폰이 없는 상태가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녁 시간에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들이 훨씬 풍부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율리시스 계약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
- 운동을 하고 싶다면 친구와 약속을 잡아 사회적 압력을 활용하라
- 금연하고 싶다면 담배를 집에서 완전히 치워라
- 과소비를 막고 싶다면 신용카드를 집에 두고 현금만 가지고 다녀라
- 집중하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거나 잠금 상자에 넣어라
제가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슈퍼맥스 타임락 박스에 폰을 넣고 8시간으로 설정하면, 그 시간 동안은 절대 꺼낼 수 없습니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그 시간 동안 집중력이 극대화되고 하루가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미래의 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제가 미리 선택을 제한한 것이죠.
양극화를 넘어서는 뇌의 설계
이글먼 박사의 연구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뇌가 내집단과 외집단을 자동으로 구분한다는 사실입니다. fMRI 스캐너 실험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종교나 집단의 사람이 고통받을 때 더 강한 공감 반응을 보였고, 다른 집단의 고통에는 무감각했습니다. 심지어 동전 던지기로 임의로 나눈 집단(쥐스탱 vs 아우구스티노)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우리 뇌는 진화 과정에서 '우리 편'을 보호하고 '저쪽 편'을 경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본능이 정치적 양극화, 인종 갈등,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르완다에서는 후 투족이 투치족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대학살을 자행했고, 나치는 유대인을 '전염병'에 비유하며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했습니다. 이런 비인간화(dehumanization) 언어는 뇌의 공감 회로를 차단하고, 사람을 사물처럼 대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연구 결과를 보고 제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솔직히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들을 때, 자동으로 방어적이 되고 귀를 닫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박사의 조언대로 의도적으로 반대편 의견을 가진 사람의 글을 읽고, 그들의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뇌의 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훈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전두엽이란 뇌의 앞쪽에 위치한 영역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교실에서도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토론하게 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먼저 요약해보게 합니다. 처음엔 불편해하지만, 점차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 시민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15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익숙함'에 안주했던 시간들입니다. 같은 교과서, 같은 수업 방식,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뇌를 잠재웠던 것이죠. 하지만 이글먼 박사의 연구를 접하고 나서, 뇌는 죽는 순간까지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간을 풍부하게 만들고, 미래의 나를 위한 계약을 맺는다면 앞으로의 30년은 지난 15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울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작은 변화 하나씩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강력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