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저는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받아 복잡한 프로젝트를 떠맡았습니다. 당시 제 심박수는 항상 높았고 소화불량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이 프로젝트를 내 무기로 만들겠다'라고 마음먹자 신기하게도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부정적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장 두근거림이 두려움이 아닌 도전 앞의 흥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스탠퍼드 신경생물학자 로버트 사폴스키 박사는 이런 현상을 '통제감'과 '인식의 전환'으로 설명합니다.

쳇바퀴 실험이 보여준 통제감의 힘
사폴스키 박사가 소개한 실험은 제 경험을 완벽하게 설명해줍니다. 쥐 두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자발적으로 쳇바퀴를 굴리고 다른 한 마리는 첫 번째 쥐가 달릴 때마다 강제로 달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리적 운동량은 정확히 같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자발적으로 달린 쥐는 운동의 모든 이점을 얻는 반면, 강제로 달린 쥐는 심각한 스트레스의 모든 단점을 겪습니다.
저도 발령 초기에는 두 번째 쥐와 똑같은 상태였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쳇바퀴를 뛰어야 했고, 매일 아침 출근이 지옥 같았습니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 제가 이를 '선택'으로 재해석한 순간, 파괴적이었던 만성 스트레스가 목표를 향한 동기부여로 바뀌었습니다. 중요한 건 머릿속 해석이었습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를 진짜 스트레스로 만드는 핵심 요소는 통제감입니다. 통제감이 있으면 스트레스 요인이 덜 스트레스가 됩니다. 예측 가능성 역시 엄청나게 보호적인 역할을 합니다. 반면 통제감과 예측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관리 기법을 강요받으면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박사는 이를 "집 없는 사람이나 말기 암 환자에게 긍정적 사고를 설교하는 것은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무정한 행동"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
거의 모든 사람이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데, 사폴스키 박사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행동의 문턱을 낮춰서 더 쉽게 일어나도록 만들 뿐입니다. 마치 볼륨을 높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 놀라운 건 테스토스테론의 '도전 가설'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당신의 지위가 도전받을 때 분비되며,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만약 당신이 개코원숭이라면 누군가 높은 지위에 도전할 때 적절한 반응은 공격성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높은 지위를 얻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급 사립학교 연례 경매에서 술에 취한 알파 수컷들이 누가 더 많은 돈을 과시적으로 기부하는지 경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이들에게도 테스토스테론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 게임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하면 게임에서 신뢰와 관대함으로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더 관대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이 아니라 '지위 유지 행동'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에 과도한 공격성 문제가 있다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공격성에 엄청나게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이 통찰은 생물학적 결정론에서 벗어나 문화적 가치를 재검토하게 만듭니다.
전두엽이 만드는 무한 계층의 스트레스
사폴스키 박사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여러 계층 구조에 동시에 속할 수 있고, 그중 하나에서 낮은 순위여도 다른 하나에서 높은 순위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가장 형편없는 일을 하지만 회사 소프트볼 팀의 주장일 수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는 전전두피질을 이용해 '9시부터 5시까지는 그냥 청구서 지불하는 것이고 진짜 중요한 건 주말의 명성'이라고 스스로 설득합니다.
저도 소셜 미디어를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의 화려한 삶과 제 삶을 비교하며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박사는 이를 "우리는 정확히 동일한 청사진으로 만들어졌지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지위가 낮은 개코원숭이는 토끼를 빼앗길 때만 스트레스를 받지만 우리는 영화 속 캐릭터를 보고, 비싼 차를 본 것만으로도, 심지어 베조스가 11분간 우주 비행한 걸 읽고도 자신의 삶이 덜 만족스럽다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 문제를 극대화합니다. 피드를 스크롤하면 수천, 수백만 개의 맥락에 노출됩니다. 이 식사, 저 축구 경기, 이 사람의 몸, 저 사람의 지능. 우리는 훨씬 제한적인 맥락에서 진화했는데, 이제 본질적으로 무한대로 확장된 다중 계층 구조 속에서 원시적 신경계가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생명체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에서 중요한 건 마법 같은 호흡법이나 운동이 아닙니다. 매일 멈춰서 자신의 건강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만으로도 80%는 달성한 셈입니다. 다만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심리적 도구로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건 폭력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생리적 개입, 즉 호흡이나 가벼운 신체 이완은 신경계가 붕괴하는 걸 막아주는 최소한의 생명줄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적 기만은 지양하되, 생리학적 개입의 가치까지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