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정신과 치료가 여전히 '말'에만 의존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스탠포드 정신의학과 칼 다이서로스 박사와 앤드루 휴버먼 교수의 대화를 들으며, 현대 정신의학이 직면한 근본적인 한계와 동시에 미래 기술이 열어갈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혈액 검사나 뇌 스캔으로 진단할 수 없는 정신 질환을, 환자의 언어를 통해서만 파악해야 하는 현실. 그러나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미주 신경 자극이나 환각제 치료 같은 혁신적 시도들이 실제 임상에서 조심스럽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주신경 자극, 뇌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우울증을 치료하다
다이서로스 박사가 설명한 미주 신경 자극술(VNS)은 제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미주 신경(Vagus Nerve)이란 10번째 뇌신경으로, 뇌에서 시작해 심장과 소화기관까지 뻗어 있는 신경입니다. 쉽게 말해 뇌와 내장 기관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신경에 전기 자극을 주는 작은 장치를 목에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뇌 깊숙한 곳의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 분비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사는 실제 환자를 치료하면서 무선 주파수 컨트롤러로 실시간 자극 강도를 조절한다고 했습니다. 환자가 숨쉬기 어려워하거나 목소리가 변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용량을 늘리는 방식이었죠.
사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하필 미주 신경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박사의 답변은 더욱 솔직했습니다.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물론 미주 신경이 뇌의 고립로 핵(Nucleus Tractus Solitarii)이라는 영역과 연결되어 있고, 여기서 한 단계만 거치면 세로토닌·도파민 시스템에 닿을 수 있다는 해부학적 근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뇌에 직접 무언가를 넣지 않으면서도 뇌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선택된 것이죠.
현재 미주 신경 자극술은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우울증 환자들에게 실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제 생각엔 이 방식이 전신에 퍼지는 약물의 부작용을 피하면서도 뇌의 특정 회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인 절충안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 '어떤 세포를 정확히 자극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목 주변의 모든 신경을 함께 자극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음성 변화나 삼킴 곤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환각제 치료, 뇌의 '가설 생성 문턱'을 낮춰 새로운 길을 열다
MDMA나 실로시빈 같은 환각제를 우울증이나 PTSD 치료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다이서로스 박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습니다. 여기서 환각제(Psychedelics)란 세로토닌 수용체를 자극해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일시적으로 변화시키는 물질을 말합니다.
박사는 뇌를 일종의 '가설 생성 기계'로 비유했습니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그중 가능성 높은 것만 의식에 올려보냅니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가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모든 가능성이 절망으로 귀결된다고 느낍니다. 이때 환각제가 하는 일은 평소라면 걸러졌을 '있을 법하지 않은 가설'까지도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환각제를 복용한 사람들이 보고하는 공통된 경험이 "내가 이렇게도 느낄 수 있구나", "이런 연결도 가능하구나"라는 깨달음이거든요. MDMA의 경우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서, 타인과의 극도로 긴밀한 연결감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약효가 사라진 뒤에도 그 경험으로부터 학습이 일어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저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이 가능한지 보았습니다"라는 환자들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다만 저는 여전히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뇌의 화학적 균형을 극적으로 바꾸는 만큼,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괴리감이나 장기적인 뇌 회로 변화에 대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FDA는 MDMA 보조 치료를 승인 검토 중이지만, 여러 안전성 문제로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식품의약국).
현재 임상에서는 아주 낮은 용량으로, 그리고 반드시 전문 치료사와의 긴밀한 대화 세션과 함께 진행됩니다. 저는 이 '치료사와의 유대'가 빠진 환각제 치료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약물이 열어준 가능성을 현실로 연결시키고, 학습된 경험을 일상에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안전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ADHD와 스마트폰, 우리 시대의 주의력 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ADHD와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저도 최근 몇 년간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업무를 하다가도 5분을 못 버티고 휴대폰을 확인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혹시 성인 ADH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집중을 유지하기 어렵고, 충동적이며, 때로는 과도하게 움직이는 증상을 보이는 신경발달 장애입니다.
다이서로스 박사는 흥미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사회적 또는 직업적 기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진단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하는 것은 오히려 적응적인 행동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메일 답장을 빨리 해야 하고, 메시지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휴대폰 확인이 사회적·직업적 기능을 '돕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미 주의력 결핍 상태에 빠져 있어서, '기능 지장'을 판단하는 기준선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것은 아닐까요? 병든 환경에 억지로 적응한 것을 건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휴버먼 교수는 자신이 어릴 때 틱 장애가 있었고, 뭔가 충격적인 자극(복싱이나 스케이트보드)을 받아야만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이 고백이 매우 솔직하고 용기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뇌 속에 뭔가 갇혀서 원하는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 알림을 확인해야만 해소되는 그 찝찝함.
다이서로스 박사는 틱 장애 환자들이 행동을 해야만 뭔가 쌓인 것이 해소되는 경험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휴대폰 확인 행동도 비슷한 메커니즘일 수 있다는 거죠. 확인하지 않으면 계속 쌓이고, 확인하고 나서야 작은 보상과 함께 해소되는 구조입니다.
현재 ADHD 진단에는 정량적 뇌파 검사(qEEG)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두피에 전극을 붙여 뇌파의 특정 리듬 패턴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병원에서 1~2시간 내에 시행 가능합니다. 아직 표준 진단법은 아니지만, 앞으로 객관적 진단 도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저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습관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뇌가 짧은 자극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정신의학의 미래는 분명 더 밝아질 것입니다. 미주 신경 자극처럼 비침습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치료법이 발전하고, 환각제 같은 논란의 물질도 안전한 프로토콜 안에서 치료 도구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여전히 '말'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이서로스 박사가 강조했듯, 환자와 치료사 간의 신뢰와 학습이 빠진 치료는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걷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니까요.